2009년 10월 02일
전통있는 트리스틴 마법학원에는 한 규정이 있다. ‘사역마를 소환하여 계약하지 못하는 사람은 2학년이 될 자격이 없다’라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사실, 이 말은 새학기가 되어 느슨해지는 학생들의 긴장을 불러일으키기 위한 정형구일 뿐으로, 실제로 사역마를 소환하지 못하거나 계약하지 못하는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당연했다. ‘서몬 서번트’든 ‘콘트랙트 서번트’든 마법사라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통마법이고, 1학년을 무사히 마칠 정도의 실력이라면 누구나 가볍게 성공할 정도밖에 안 되었으니까. 오히려 이 마법을 실패하라고 하는 것이 더 무리일 정도다.
하지만, 내게 있어선 그야말로 거대한 벽이나 다름없었다.
눈앞에 펼쳐진 ‘베스트리의 광장’에서는 지금도 한 학생씩 계속해서 소환이 진행중이다. 불려나오는 것은 평범한 개나 고양이에서부터 시작해서 눈이 둥실둥실 하늘을 떠다니는 버그베어, 여자의 몸에 뱀의 하반신이 달린 스큐라, 붉은 색 피부에 불이 붙은 꼬리를 흔드는 샐러맨더 등으로 가지각색이었다.
특히 그 중에서도 특별한 환수를 불러낸 학생들은 주위의 다른 학생들에게 부러움 반, 질투 반의 시선을 받기가 일수였다. 저기 저 빨강 머리의 꼴도 보기 싫은 녀석도 일반적인 샐러맨더보다 몇 배는 큰, 거의 망아지만한 크기의 샐러맨더를 불러내어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당연하다는 듯 그 시선을 가볍게 받아넘기는 그 모습이 더더욱 그 녀석을 꼴 보기 싫게 만들고 있었다.
“윽……!"
내가 쳐다보고 있던 것을 눈치 챈 것인지, 나와 눈을 맞추고는 그 녀석은 마치 ‘부럽지? 너는 이런 걸 부를 수도 없을 걸?’이라고 말하듯 재수 없는 표정으로 웃었다. 상당히 떨어져있었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표정이 의미하는 바는 바로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뚜렷하게 내 눈에 들어왔다. 그것에 더더욱 짜증이 밀려와 나는 곧바로 눈을 돌려버렸다.
“풍룡이다! 풍룡을 불러냈어!” 갑작스러운 고함소리에 무심코 그쪽을 돌아봤다. 거기에는 그 크기로 보나 생김새로 보나 훌륭한 풍룡과, 그와 계약하는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보는 즉시 그 모습을 본 사실에 대해 후회가 밀려왔다. 지금 자신에게는 단지 소환하고 계약하는 것만으로도 다급한데, 그것을 보자 ‘나도 저런 걸 소환했으면…….’하는 소망이 생기는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된다면 더 바랄 것도 없겠지만, 지금의 나에게 과연 그런 행운이 있을 수 있을지…….
‘아냐, 루이즈. 일단 눈앞의 현실에 집중하는 거야. 소환, 일단 소환하는 것에 집중하자.’
그렇게 자기 자신에게 되뇌며 지금까지 연습해온 소환 마법의 주문, 지팡이를 휘두르는 방향, 그러면서 떠올려야 하는 이미지 등을 다시 한 번 떠올린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수차례 연습하는 사이, 어느덧 순서는 나한테까지 돌아왔다.
“미스 바리에르. 자네 차례네.”
이미 불혹의 나이를 눈앞에 둔 머리가 반쯤 벗겨진 교사, 콜베르의 말에 나는 곧 소환 마법에 들어갔다. 지팡이를 들고, 사역마와 만나고 싶다는 강한 소망을 담고, 지금은 아직 보지 못한 사역마의 모습을 최대한 떠올리며,
“내 이름은 루이즈 프랑소와즈 르 블랑 드 라 바리에르. 다섯 가지 힘을 주관하는 펜다곤, 내 운명에 따라, ‘사역마’를 소환하라!”
곧이어, 언제나와 같은 ‘폭발’. 그 폭심지를 뚫어지게 쳐다보지만, 흙먼지가 걷힌 그곳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다시말해, 실패.
“하하하, 또냐? ‘제로’의 루이즈!”
“너 언제쯤 돼야 성공할 거냐? ‘제로’의 루이즈!”
마치 준비라도 한 듯이 순식간에 쏟아지는 야유. 하지만, 나에게 그런 것에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나는 다급하게 미스터 콜베르에게 “다시 하겠습니다!”라고 외치고, 다시 소환의 주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물론, 미스터 콜베르가 자신의 학생을 단 한 번의 실수로 뿌리쳐버릴 야박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일말의 불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시 폭발.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폭심지 안에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래도, 난 내가 쥐고 있는 희망이 끈을 쉽사리 놓지 못했다. 그것은 일종의 오기와도 같았다. 내가 아직 마법이란 것에, 나 자신이란 것에, 아직 포기하지 않겠다고 바라는 마음. 그것은 일종의 어리석음일지도 몰랐으나, 내가 아직 이곳에 발을 이렇게 디딜 수 있는 것은 바로 그 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한동안 이어지는 수차례의 폭발. 어느 정도까지는 횟수를 거듭할수록 고조되어가던 야유도, 이미 그 기세를 잃고 가끔씩 비난조의 한 두 마디가 폭발이 일으키는 소음을 겨우겨우 뚫고 귀에 와 닿을 뿐이었다. 그 안에서 나는 폭심지를 필사적으로 쳐다보고 주문을 외우며, 머릿속에서 내가 하는 소환의 문제점을 찾았다. 나오는 답은 항상 ‘문제없음’. 지팡이를 휘두르는 스냅도, 주문의 억양도, 내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도, 나의 바람도 모두 교과서에 실려져 있는 그대로, 아니, 몇몇 점에서는 그 이상이라고 이성이 나에게 외치고 있었다. 그러나, 가시지 않는 폭발음.
“미스 바리에르. 시간 관계상, 이쯤에서 마치고 다음 기회에 해야 할 것 같네.”
어딘가 미안함이 묻어있는 콜베르의 말. 하지만, 나에게 그 말은 스퀘어 클래스의 불의 메이지가 나에게 외우는 공격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다. 마치, 이제 한 소절만 마치면 나란 존재가 완전히 세상에서 사라질듯한 감각. 그것을 방해하기라도 하듯, 나는 미스터 콜베르에게 매달렸다.
“전 아직 더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미스 바리에르, 자네도 많이 지쳤네. 게다가 다음 수업을 제쳐두고 소환 마법에만 매달릴 수는 없네. 다음에 기회를 줄테니, 지금은 그만……."
“아닙니다, 더 할 수 있어요! 이번에야말로 해낼 수 있어요!”
마치 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는 듯이 반복하는 말. 계속되는 언쟁에 미스터 콜베르는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뭔가를 결심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햇다.
“그렇다면, 단 한 번. 단 한 번의 기회를 더 주겠네. 명심하게. 성공하든 실패하든, 이것이 마지막이네.”
미스터 콜베르가 하는 말이 가진 미묘한 무거움에, 잠시 몸이 긴장으로 경직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나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문에 들어갔다.
마지막이라는 말에 자극을 받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가 완벽하다 생각했던 모든 것이 결실을 맺지 못했기 때문일까. 어느 사이엔가 내 입은, 그 어떤 책에도 실려있지 않은 나만의 진심을 주문 대신 내뱉고 있었다.
“이 우주 어딘가에 있는 강하고, 신성하며, 아름다운 사역마여!”
엉망인 것은 주문만이 아니었다. 지팡이를 휘두르는 손도, 그저 천천히, 하지만 있는 힘껏 들어올려질 뿐이었다. 이미 손의 스냅이라던가, 기교같은 것은 모두 사라진 단조로운 움직임. 하지만, 내 모든 것을 담았을 단 한 번의 휘두름을 준비하며.
“나의 부름에 따라, 여기에 나타나라!”
그리고, 지팡이가 휘둘러졌다.
폭음이 일었다. 그것은 여느 때와 전혀 다름이 없는 폭발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동요하지 않고, 난 폭심지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그리고 흙먼지가 걷히자, 그곳엔 기묘한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나의 사역마인 듯한 존재가 분명히 그곳엔 존재하고 있었다. 바닥에 누워있는 상태라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그것은 분명히 내 사역마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 앞에, 붉은 머리의 그 꼴도 보기 싫은 녀석이 있었다. 항상 보는 것만으로도 짜증나던 그 녀석이, 더더욱 불쾌하게도 남의 사역마의 앞에 자기가 먼저 가 있었던 것이다. 녀석은 뭔가에 놀란 듯한 모습이었지만, 녀석이 놀라건 말건 그런 것은 상관이 없었다. 문제인 것은, 그 녀석이 내 사역마에게 먼저 가있다는 것이었다. 지금까지의 녀석으로 보건데, 이번에도 뭔가 나를 비아냥댈 거리를 찾고 있으리란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난 단숨에 내 사역마에게 달려갔다. 분명 그 녀석이 먼저 내 사역마에게 다가가 있었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었지만, 없을 리도 없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보다는 내 사역마와 계약, ‘콘트랙트 서번트’를 맺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리고 내 사역마를 본 후, 난 세상이 뒤집히는 것을 느꼈다.
그 사역마는, 아인의 한 종류인 듯했다. 피부는 인간보다는 양서류의--내가 싫어하는 '그것'과 같은--것과 오히려 더 비슷해보였고, 형태는 오히려 뱀의 그것과 닮은 듯이 보였다. 얘기로만 들은 리자드맨이 이런 모습일까. 걸치고 있는 옷은 녹색을 기본으로 해서 어깨같은 포인트 부분에 검은 색을 넣은, 단순하지만 기묘하여 어디서도 본 적이 없는 형태의 옷이었다. 그러면서도 색깔이 다른 부분에 바느질 선 하나 보이지 않아, 마치 하나의 천으로 만들어진 것 같은 인상이었을 듯 싶었다.
'듯 싶었다'라는 말에는 이유가 있었다. 옷은, 제 모습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아니, 옷만이 아니었다. 내가 소환한 사역마의 얼굴, 팔, 다리 할 것 없이 곳곳이 뭔가에 패인 듯 깊히 상처가 나 있었고, 어느 부위는, 아니, 상당수의 부위가 뼈가 하얗게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가슴에는 뭔가 거대한 포탄에라도 맞은 듯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기까지 했다. 신기하게도, 그 어느 곳에도 피는 흐르지 않았다. 아니, 피부의 상태를 보건데, 이미 몸의 수분이란 수분은 다 빠져나가 있었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까. 그 몸은 마치 얼음의 정령의 저주라도 받은 듯 지금도 계속해서 서리가 맺혀가고 있었으나, 그럼에도 그 몸에는 미동조차 일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한 가지 사실로 모아졌다. 내가 소환한 사역마는, 죽은 것이다. 아마도, 내가 소환하기 이전부터.
'콘트랙트 서번트'를 맺을 생각은 들지 않았다. 메이지와 그 사역마의 계약이 끊기는 것은 둘 중 하나의 생명이 끊길 때까지. 이미 죽어버린 사역마에게 계약을 맺어봤자 바로 끊어질 뿐일테니까.
"우, 우와, 이거봐! 루이즈가 시체를 소환했어!"
"과연 '제로'의 루이즈! 사역마의 목숨도 '제로'로 만드나보네!"
이제야 사역마의 정체를 알아챈 것인가, 다시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한 다른 학생들. 녀석들의 야유가 귀를 때렸지만, 그것보다도 더 가깝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있었다.
"루이즈."
소리가 나는 곳을 돌아봤다. 그곳에는, 안면의 미소를 짓고 있는 그 녀석. 평소에는 비아냥거림이 서려있는 녀석의 미소가, 지금은 정말 기쁜듯이, 마치 꽃봉오리가 지금 막 피어오른 듯이 보였다. 녀석이 남자들을 흘리는 그 미모까지 더해져, 그 미소는 여자인 나에게조차 눈부셔보일 정도였다.
"역시 넌, 내가 생각한 대로였어."
그 미소로 날 바라보며, 녀석이 말했다. 순간, 현기증이 드는 것 같았다.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 중심엔 녀석이 있었다. 나의 실패가, 너한테는 그렇게 큰 기쁨인 거야? 그렇게 예쁜 미소를 지을 정도로, 그 정도로 나의 실패가 기쁜거야? 그렇게나, 그렇게나!
흔들렸던 시야가 한 순간 돌아왔을 때, 녀석의 얼굴은 한 쪽으로 돌아가있었다. 곧이어 점점 빨갛게 부풀어오르는 뺨. 내 손바닥에 전해지는 저릿한 통증이, 이 일을 일으킨 것이 나라는 것을 알리고 있었다. 녀석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그 표정이 뭔가 너무나 웃겨보였지만, 그보다도 분노가 앞서 웃음은 나오지 않앗다.
"같은 학우들끼리 뭐하는 건가! 당장 그만두게!"
그 모습을 본 미스터 콜베르가 다급히 우리 둘을 떼어놓았다. 특별히 싸움을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난 미스터 콜베르가 이끄는 대로 끌려갈 뿐이었다. 그제서야 나를 보년 녀석의 눈에도 이해의 빛이 서리고, 지금까지는 한 번도 보지 못한 표정--분노와 실망--으로 녀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분노는 그렇다치고, 실망은 왜 있는 거지?'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으나, 바로 떨쳐버리고 녀석을 그저 노려볼 뿐이었다.
"일단 누구 아무나 미스 첼푸스트에게 가서 물의 마법으로 치료를 해주게. 그런 다음 바로 다음 수업 장소로 이동하도록! 그리고, 미스 바리에르, 자네는 수업이 끝나고 바로 나에게 와주게."
미스터 콜베르의 말에, 광장의 모든 학생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나와 그 녀석은 한동안 서로를 노려보고 있었지만, 곧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는 내가 소환한 사역마를 쳐다봤다. 어느 사이엔가 몸에 어리던 서리가 녹아 물방울이 되어있었다.
난 그것을 그냥 놔두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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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가서 처음 올리는 글. 군대에서 이런 짓 하고 있다.
세상에, 키보드로 치는 게 시간이 너무 걸려서 다음에 더 올려야 하다니!
# by unclok | 2009/10/02 20:27 | 망상 | 트랙백 | 덧글(1)